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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노래 2 :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1925년)

인형술사 2010. 4. 16. 13:14
블루스로 토해낸 흑인여성의 운명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검둥이고, 더블린 사람은 아일랜드의 검둥이니까.”

더블린의 후락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커미트먼트〉(1991, 앨런 파커 감독)에서 레코드 제작자를 꿈꾸는 주인공은 자신들이 흑인음악을 ‘연주해야만 하는’ 이유를 그렇게 풀이했다. 그 표현을 빌리면 1920년대 블루스 초창기의 유명한 가수들이 죄다 여성이었던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흑인여성은 검둥이 중의 검둥이였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인종차별로 억압받은 미국 흑인역사의 산물이었고, 흑인여성은 거기에 성차별의 중압까지 부과받은 열등한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1920년대 최고의 가수였고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의 하나로 꼽히는 베시 스미스(1894~1937)는 인생을 통해 블루스를 살았던 인물이다. 1923년 80만장이 팔려나간 싱글 〈다운하티드 블루스〉로 파산 직전의 ‘콜럼비아’ 레코드사를 기사회생시키며 극적으로 데뷔한 스미스는 당대 가장 성공한 흑인 예술가였다. 후대의 영향력도 거대하다. 빌리 홀리데이, 마할리아 잭슨, 아레사 프랭클린, 재니스 조플린- 각각 재즈, 가스펠, 솔, 록을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하나같이 그를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을 정도다. 풍부한 성량과 세밀한 표현력을 동시에 갖춘 스미스의 보컬은 블루스의 미묘한 본질, 즐거운 노래에도 눈물이 담겨 있고 슬픈 노래에도 낙관이 실려 있는 운명적 아이러니를 감동적으로 설득한 궁극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베시 스미스 최고의 노래일 뿐만 아니라, “재즈의 〈햄릿〉”이라 불리는, 더블유시 핸디 원작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해석이다. 주지하다시피, 1920년대는 아직 블루스와 재즈가 개별적인 장르로 완전히 분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스미스의 존재가 그 경계를 나눴다. 그래서 프로듀서 존 해먼드는 그의 노래가 “오늘날 블루스의 바로 그것”이라고 평했다. 스미스의 노래는 구전으로만 남은 영가, 블루스, 재즈 사이의 근원적 동질성과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로제타스톤이다. 또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에게 발탁된 스미스가 ‘블루스의 아버지’ 핸디의 곡을 통해 ‘블루스의 여왕’에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고전 블루스’ 가계도의 꼭짓점이기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컬러 퍼플〉의 작가 앨리스 워커는 여성 블루스 가수, 특히 베시 스미스에게서 창조적 자극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작품에는 스미스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은 소설과 다르다. 스미스의 말년은 초라하고 비참했다. 자신이 사랑한 남자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는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었다는 자가 장례식 기금을 챙겨 사라지는 바람에 그의 무덤이 묘석도 없이 30년 이상 버려져 있었다는 대목에는 말문조차 막힌다.

베시 스미스는 흑인이었고 여성이었다. 그것은 그가 끝내 벗어나지 못한 원죄의 굴레였다. 그가 동명의 단편영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노래와 연기로 새겨 넣은 장면은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던 것이다.(영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외국의 유명 유시시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은석/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