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노래 1 : 빌리 홀리데이 <스트레인지 프룻>

2010. 4. 16. 12:56Media

현대에 들어 대중음악은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와 호흡하며 때로는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 그리고 한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섰던 노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가 현대사의 주요 고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거나 새로운 유행, 새로운 흐름을 불러 일으킨 노래를 매주 한 곡씩 골라 노래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를 소개한다.
 
‘인종폭력 광기’ 고발한 피울음
빌리 홀리데이 <스트레인지 프룻>(1939년)


“화사한 남부의 목가적 풍경 속에/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뒤틀려 (포플러 가지에 매달린 검은 몸뚱이)/ 달콤하고 청명한 목련 향기와/ 불현듯 코를 찌르는 살이 타는 냄새….”

에드가 앨런 포의 괴담 한 토막이 아니다. 로트레아몽의 잔혹시 구절도 아니다. <스트레인지 프룻>의 노랫말은 차라리 사건기자의 르포르타주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고문하고 목 매달달아 죽인 흑인의 주검을 “남부의 나무에 열린 괴상한 열매”로 비유한 이 노래는 미국현대사의 치부인 인종차별 폭력의 참상을 소름 끼치도록 세밀하게 묘사한다. 대중음악의 정서적 임계점을 넘어서는 날카로운 단어들의 충격파는 그러나 빌리 홀리데이의 나직한 목소리와 맞닿는 순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울림이 된다.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룻>은 인종차별에 최초로 현대적이고 직접적으로 저항한 음악이다. 이전에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노래는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블랙 앤 블루>나 어빙 벌린이 만든 <서퍼 타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곡은 앞선 전례들을 순진한 동요로 만들어버렸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감성이 아니라 각성에 부친 노래였다는 점에서 본질부터가 달랐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뉴욕 브롱크스의 고등학교 교사였던 유대계 백인 애벌 미로폴이었다. 린치 현장의 기록사진에 충격을 받은 그는 1937년 루이스 앨런이란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악보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홀리데이다. 1939년 1월, 뉴욕 최초의 인종개방 클럽인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초연은 그 자리에서 이미 팝음악의 전설이 되었다. 홀리데이는 곧바로 이 노래를 녹음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논란을 두려워한 소속사 콜럼비아는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결국 홀리데이는 인디레이블 코모도를 통해서야 레코드를 발매할 수 있었다. 1939년 4월 첫 번째 세션에서 빌리 할리데이는 최고의 버전을 만들어냈다.

비평가 요아힘 베렌트는 “재즈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진리”라고 전제한 바 있다. 그리고 홀리데이가 바로 그 “진리의 화신”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마치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홀리데이는 이 곡을, 치밀어 오르는 울분과 설움을 억지로 삼켜내고서야 겨우 목구멍 너머로 내놓을 수 있는, 고통스럽게 토해낸 한숨처럼 노래했다. 그의 해석에 원작자 미로폴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홀리데이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스타일로 내가 이 노래에 바랐던 비탄과 충격의 질감을 완전하게 구체화시켰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예상대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힘겨워하면서도 모든 공연 마지막에는 이 곡을 불렀다. 노래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노래에 담긴 아픔을 두려워했지만 그조차도 끝내 떨쳐냈던 것이다. 홀리데이는, 적어도 이 노래에 관한 한, 위대한 가수 이전에 용감한 인간이었다.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그는, 비평가 랠프 글리슨의 말처럼 “인생을 통해 <스트레인지 프룻>의 가사를 체화”했던 것이다. 뒷날 유색인종/여성/동성애자라는 이름의 ‘괴상한 열매’들이 천부의 인권을 외치며 거리에 섰을 때,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이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세상에 많다. 하지만 영혼까지 흐느끼게 하는 곡은 흔치 않다.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룻>이 그런 노래다.


박은석/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