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노래 4 : 루이 암스트롱의 〈웨스트 엔드 블루스〉(1928년)

2011. 3. 28. 17:34Media

‘재즈’의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다

1999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사진)은 20세기를 결산하며 “금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을 선정했다. 비슷한 시기 <라이프>도 새 천년을 앞두고 “밀레니엄을 만들어온 100인”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비틀스를 위시한 몇몇 대중음악가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서 언급된 인물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루이 암스트롱. 그에 대해 <타임>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파블로) 피카소, (제임스) 조이스와 나란히 언급될 수 있는 극소수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했고, <라이프>는 “그의 즉흥연주 능력과 기교적 탁월함이 재즈를 규정했다”고 평했다.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은 재즈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솔로이스트였다. 그 말은 곧, 그가 재즈를 ‘재즈답게’ 만든 최초의 혁신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즈는 악기와 악곡을 통제하는 냉철한 이성과 그것을 정서적으로 치환해내는 뜨거운 감성 사이의 균형감각을 전제로 하는 고도의 창조행위다. 그 표준을 제시한 인물이 암스트롱이었다. 그래서 <타임>은 “아폴로와 디오니소스가 뉴올리언스 출신 천재의 격렬한 내적 세계에서 만났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웨스트 엔드 블루스〉가 바로 그 전범이다.

스승이었던 킹 올리버의 곡을 연주한, 암스트롱의 1928년 버전 〈웨스트 엔드 블루스〉는 많은 비평가들이 “본격적인 재즈 역사의 시발점”으로 꼽는 작품이다. 카덴차 스타일의 짧은 독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가 신기원이었다. 얼 하인스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이어지는 암스트롱의 마지막 리드 파트는 재즈 솔로의 형식과 구조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명연이었다. 잔잔하게 넘실대는 스윙 리듬, 치밀하게 축조된 솔로 연주, 노래하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스캣 창법에 이르기까지, 3분을 겨우 넘는 단출한 연주 시간 동안 암스트롱은 재즈의 우주에 창세기적 질서를 부여하는 거대한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웨스트 엔드 블루스〉를 통해 루이 암스트롱이 제시한 음악적 비전의 영향력은 재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악기를 통해 인간을 드러낸 방식은 이후 20세기의 대중음악 전체에 영감을 주었다.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대중문화 책임자였던 빌리 마틴은 “루이 암스트롱이 20세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을 정도다. 실제로 암스트롱은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지미 로저스의 〈블루 요들 넘버 나인〉에서, 그리고 빙 크로스비와의 협연작들을 통해 줄곧 블루스와 컨트리와 팝을 아우르는 ‘20세기 대중음악의 허브’로 기능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웨스트 엔드 블루스〉를 “로큰롤 역사를 만들어온 노래”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은 그에 대한 상징적인 헌사나 다름없다. 대중적인 스타일에 치우쳤던 루이 암스트롱의 후기 활동은 오늘날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암스트롱이 견뎌야 했던 혹독한 차별의 세월과 그 속에서 창조해낸 음악적 유산을 외면할 수는 없다. 〈왓 어 원더풀 월드〉의 낙관적 메시지는 지난한 여정을 마친 자의 여유를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 앞에서 대중영합적이라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세상을 바꾼 거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박은석/음악평론가